
2007. 1. 13.
미켈란젤로 언덕에서. 동생.
아침 일찍 일어나 체크아웃을 했다. 베네치아가 좋으면 하루 더 있을까 했는데 아쉽게도 내 기대를 다 채워주지 못했다. 이 놈의 이탈리아 도시들에 대한 환상은 다 시오노 나나미 그 여자 때문이다.
어제 산타루치아 역에서 숙소로 오는 것도 참 힘들었는데 돌아가는 길도 마찬가지였다. 베네치아의 길은 자갈길인데다 골목 하나를 통과할 때마다 계단으로 된 아치형 다리가 수도 없이 나온다. 트렁크 끌고 가는 것도 이렇게 힘든데 휠체어는 택도 없다. 지체장애인이 살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살기 나쁜 도시 1, 2위를 다툴 것이다.
산타루치아 역에서 피렌체 가는 기차표를 예매하는데 뭔가 이상했다. 유레일 패스 소지자는 유럽 내의 기차를 탈 때 무료로 타거나, 약간의 예약비를 지불하면 탈 수 있다. 이탈리아의 유로스타는 예약비가 15유로라고 알고 있었는데(다른 곳에 비하여 비싼 편이다) 역무원 아저씨가 표 두장에 60유로를 내라고 했다. 나는 분명히 buy가 아니라 reserve라고 얘기했고, eurail pass holder인데 왜 이렇게 비싸냐고 따졌더니 그 아저씨가 볼펜으로 티켓에 밑줄까지 그어가며 맞다고 하는 바람에 물러날 수 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너무 이상하고, 계속 표 값을 생각하다보니 억울하기까지 했다. 안되겠다 싶어서 이번에는 다른 창구로 가서 이거 왜 이렇게 비싼 거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 창구의 여자 역무원이 원래 넌 반값인 15유로만 내면 되는데 뭔가 잘못됐다고 했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그 다음이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잘못되긴 했는데 자긴 이 티켓을 바꿔줄 수 없다는 거였다. 어이가 없어서 "Why?" 라고 했더니 대번에 "It's not my fault."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 표 끊어 준 걔한테 가서 따지라 이거다. 우리나라에선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어쨌든 표를 잘못 끊어준 건 그 역에 근무하는 같은 역무원이고 그렇다면 동료로서 당연히 환불해 주고 책임은 후에 역무원들끼리 논하면 되는 거 아닌가? 서울역에서 이따위로 나온다면 당장 신고 들어갈텐데, 여기 애들은 서비스 정신이라곤 손톱만큼도 없는 모양이었다. 정말 때려주고 싶었지만 꾹 참고 아까 그 아저씨한테 가서 좀 짜증 섞인 목소리로 따졌더니 아깐 몰랐다면서 미안하단 말 한마디 없이 티켓을 재발급해서 30유로와 함께 돌려주었다. 불친절하기 이를 데 없는 사람들이었다.
독일 ICE는 무료로 탈 수 있는데 이탈리아의 Eurostar는 예약비를 15유로나 받는 주제에 ICE보다 객차 상태가 훨씬 좋지 않았다. 게다가 전용노선도 아닌지 무지 느렸다. '피렌체까지 세시간이나 걸리다니, 돈만 비싸고 이게 무슨 고속이야' 하며 치밀어오르는 화 때문에 머리가 이상해 질 지경이었다. 산타루치아 역과 유로스타 덕분에 이탈리아에 대한 이미지가 사정없이 추락했다.
피렌체 SMN 역에 도착해서도 짜증의 연속이었다. 가져간 호스텔 전화번호를 눌렀더니 이탈리아 말이 들렸다. Hello라고 하자 뚝 끊겼다. 다시 전화했더니 아예 받질 않았다. 몇 번을 더 걸어도 마찬가지길래 안되겠다 싶어서 일단 역 안 맥도널드에서 점심을 먹고 나왔다. 또 전화해봤더니 이번엔 받았는데 Hello 하자마자 기분나쁜 신호 끊기는 소리가 들렸다. 아깐 끊어졌나 싶었는데 두번 당하고 나니 일부러 끊은 거라는게 확실해졌다. 난감했다. 어디서 자야하나. 할 수 없이 인터넷으로 주변 호스텔을 검색하려고 information으로 가서 인터넷 카페 위치를 알려달라고 했다. 아저씨가 도저히 알아볼 수 없는 매우 부정확하고 대충 그린 약도를 주었다. 절망적인 심정으로 약도를 들고 역을 나서는데 마흔살 쯤 되어보이는 히스패닉 여자가 "Do you speak English?" 하며 다가왔다. 일단 그렇다고 대답하고 경계하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 여자가 자기가 1인당 20유로의 좋은 방이 있는 호스텔을 아는데 일단 한번 보고 마음에 안 들면 거절해도 된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을 따라가면 절대 안 된다고 배웠지만 호스텔 때문에 막막하던 차라 어쩔 수 없었다. 대낮이고 동생도 있는데 설마 무슨 일이 생기랴 싶어 그 여자가 가자는 대로 따라갔다. 가는 길에 그 여자는 우리더러 로마에 가게 되면 소매치기를 조심해야 하고, 나폴리를 가게 되면 더욱 더 조심해야 한다고 일러주었다. 아마도 우리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이런 저런 얘기를 하는 것 같았다.
그 아줌마가 운영한다는 호스텔은 제법 좋았다. 샤워실이 딸린 트윈룸에 냉장고, 전자레인지, 식탁, 책상도 있고 방도 그만하면 널찍했다. 나갈 수 있는 뒷뜰도 있었다. 물론 아침식사가 없긴 했지만 이 정도 조건에 1인당 20유로면 좋다 싶어 당장 돈을 치르고 짐을 풀었다. 아줌마는 피렌체 시내 지도를 한장 주면서 관광 명소를 볼펜으로 동그라미 쳐 주었다. 덕분에 시내 돌아보기가 매우 편했다.
숙소를 나서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을 지나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으로 갔다. <냉정과 열정 사이>의 바로 그 성당이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너무 커서 카메라에 다 들어오지가 않았다.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의 정문. 분홍빛의 외벽이 정말 아름답다.
성당의 내부를 구경한 후, 두오모 쿠폴라에 올라가려고 했더니 15시 20분까지라고 했다. 마악 20분이 지난 상태였다. 아쉬웠지만 내일 올라가기로 하고 아이스크림을 먹고 싶다는 동생의 의견에 따라 뮌헨에서 만난 사람들에게서 베껴 적은 아이스크림집으로 향했다. SMN 성당에서 멀지 않았다.

너무 맛있어서 3일 내내 찾은 피렌체의 아이스크림 가게 GROM
가게에 들어섰더니 알바생인지 일본인 아가씨가 친구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가 아이스크림을 고르는 동안 친구가 가게를 나갔고 알바생 아가씨는 "마따네."라며 손을 흔들어주었다. 흠, 피렌체 아이스크림집의 일본인 알바생이라. 밀라노 보석가게 종업원 아오이랑 비슷한 걸.
동생은 레몬과 커피, 나는 레몬과 요거트 맛을 먹었는데 셋 다 맛있었다. 동생은 레몬 최고라고 난리였다. 나오면서 알바생에게 정말 맛있었다고 칭찬 한마디 해 주었다.

베키오 궁 앞의 다비드 상
다음은 미켈란젤로 언덕이었다. 가는 길에 베키오 궁과 우피치 미술관 앞을 지나는데 다비드 상이 서 있었다. 아까 호스텔에서 아줌마가 피렌체에 '데이빗'이 있는 세 곳을 지도에 표시해 주었는데 여기와 미켈란젤로 언덕, 그리고 아카데미아 미술관이었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에 있는 다비드만 진품이고 나머지는 모조품이라고 했다. 비록 짝퉁일지라도 사진으로만 지겹게 보던 다비드를 실제로 만나니 제법 반가워서 '헬로 데이빗'이라고 인사하고 싶어질 지경이었다.

보석 상점이 늘어선 폰테 베키오
아르노 강을 건너기 위해 베키오 다리로 올라섰더니 다리 양 옆으로 보석가게들 뿐이었다. 그러고보니 책에서 베키오 다리는 수백년 전부터 보석상으로 유명했다던 이야기를 읽은 적이 있었다. 호스텔 아줌마 말로는 아르노 강에 세워진 다리는 전부 베키오가 설계했는데 왜인지 이 다리만 화려하게 만들었다고 한다.
해지기 전에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야 한다는 일념으로 아르노 강을 따라 부지런히 걸었다. 미켈란젤로 언덕에 정상까지는 꽤 많은 계단을 올라야 했다. 하긴, 피렌체 전경이 보일 정도면 상당히 높은 곳일테니까.

미켈란젤로 언덕에 올라 내려다 본 피렌체는 숨막히게 아름다웠다. 도시를 뒤덮은 빨간 지분들을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베네치아가 기대 이하였다면 피렌체는 기대 이상이었다.

미켈란젤로 언덕의 다비드 상
이 언덕 위에서 초등학생 남매를 데리고 다닌다는 그 아줌마를 또 만났다!! 제네바 역, 베네치아 역, 피렌체 역, 미켈란젤로 언덕. 벌써 네번째였다. 일정이 겹치는 모양이다. 네번이나 마주쳤으니 서로 알기는 아는데 인사하기는 뭐한 사이여서 결국 마지막까지 모른 척하고 말았다.
언덕을 내려와 호스텔 아줌마가 소개해 준 레스토랑 중 한 군데를 갔다. Gnocci라는 것과 치킨을 시켰는데 그닥 맛이 있진 않았다. Gnocci는 손가락 한 마디만한 밀가루 떡으로 된 파스타였다. 먹고서 계산하려고 봤더니 또 빵 때문에 3유로 추가였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은 대부분 유료인 빵이 자동으로 포함되어 있는 것 같았다. 참으로 마음에 들지 않는 시스템이다.
런던은 길이 넓지만 다니는 사람이 적어 무서웠는데 피렌체는 골목이 좁고 어둡긴 해도 밤에도 사람이 많이 돌아다녀 별로 무섭지 않았다. 골목마다 거리 이름도 붙어 있어 숙소로 돌아오는 길을 찾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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