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ne of Concrete Gables :: 사람사람사람, 그리고 인연

Anne of Concrete Gables




동두천에서 군복무 중인 대학 동기 박모 상병에게서 전화가 왔다. 자기가 그동안 입만 열면 군대 토할 것 같다고 불평했는데 진짜로 토한 얘기를 해주겠다는 거였다. (드러운놈)
불쌍한 박상병은 부대에서 체육대회를 했는데 원치 않았으나 중대 대항 릴레이 주자로 뽑혀서 나가게 되었단다. 주자 한명이 달리는 구간은 1km. 까짓 거 1km 나도 초딩 때 오래달리기 하면서 해봤다고 했더니 박상병이 릴레이는 다르다고 흥분했다. 앞에서 도망가고 뒤에서 쫓아오고, 속도를 도저히 늦출 수 없는 죽음의 달리기란다. 작년에도 릴레이 한번 하고서 토할 뻔 했는데, 올해는 정말로 끝나자마자 토했다고 한다.

그러나 박상병은 먹은 걸 도로 뱉어낼 정도로 열심히 달렸는데도 불구하고 욕을 먹었다는데....  옆레인 찰리 중대의 같은 여덟번째 주자에게 박상병이 그만 역전을 허용한 것이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빵 터지고 말았으니, 찰리의 여덟번째 주자 김모 병장은 나의 고등학교 동창이었기 때문이다. 김병장의 이름을 듣자마자 난 "야, 걔 달리기 잘하잖아!"

박상병이 이제와서 고백하길, 자기는 달리기에 어느정도 자신이 있기도 했고, 솔직히 김병장을 만만하게 봤다는 거였다. 그래서 난 또 풉. 고등학교 때도 김병장을 보고서 그 누구도 달리기를 잘하리라고 예상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신학대학에 재학 중인 김병장은 고교 시절에도 독실한 신앙심과 성실한 생활 태도와 학습 자세로 같은 반 급우들에게 '참 대단하다, 본받을 만하다'는 칭찬을 들었다. 여자애들끼리 잠깐 '아들이 저렇게 착하고 성실하면 엄마가 얼마나 좋으실까'라는 이야기를 했던 것도 기억이 난다.

김병장하면 신앙심과 성실함이었으니, 그와 달리기를 연관시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 당연했다. 게다가 김병장은 체격이 아주 좋은 편도 아니었기 때문에, 우리는 50m 달리기를 하던 날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김병장이 바람을 가르며 엄청난 속도로 질주하는 게 아닌가.


생사를 경계를 오가며 달렸는데도 비참하게 역전당하고 욕까지 먹어 속이 쓰렸던 박상병은 2마일, 즉 3.2km 기록이 어떻게 되시냐고(ㅋㅋㅋㅋ) 김병장님께 여쭈어보았더니 12분 30초라고 하셨단다.


참 신기하다. 나와 연결된 사람들이 다른 곳에서 만나 또 다시 연결되고 하는 이 모든 인연이.

군대 인맥이란 게 생각보다 엄청나다. 징집이라는 것이 20대 청년들의 인간관계를 랜덤하게 재배치하는 작업이 아닌가. 군대만큼 자신과 성장배경이 전혀 다른 사람들을 한꺼번에 그렇게 많이 만날 기회가 없을테니 말이다.


저 동두천 박상병은 내 또다른 고딩 친구 평택 말초코 상병과 훈련소 동기이기도 한데, 지금은 종종 만나서 술도 마시는 친구가 되었다. 이건 전적으로 내 덕이다. 들어보니 둘다 같은 달에 카투사로 입대한다기에 양쪽에 이렇게저렇게 생긴 찌질한 놈을 만나면 내 친구이니 아는 척을 하라고 말해두었다. 그랬더니 정말로 같은 내무반을 쓰게 되어 알게 되었다나 뭐라나.

그런데 박상병이 동두천으로 가면서 그 쪽에서 이미 복무하고 있던 내 고등학교 동창 김병장을 알게 되었고, 박상병이 김병장보다 짬밥이 한참 안되니 함부로 말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 참 웃긴다. 박상병만 놓고 보아도 이렇게 저렇게 연결되는 게 참 신기하기 그지없다. 동시에 좀 무섭기도 하다. 이래서 착하게 살아야 한다.


박상병도 말상병도 김병장도 다들 좋은 친구들이고, 내 친구들끼리 다시 자기들끼리의 인연을 맺게 된다는 게 내 입장에서는 기쁘고 고마운 일이다. 내 친구 얘기를 공유할 사람이 더 늘어났으니까. 새끼치는 좋은 인연들.

여기까지는 즐거운 이야기.


그렇지만 끝이 좋지 않았던 옛 인연을 생각하면 참 슬프고, 마음이 먹먹하다.
실수도 있었고, 오해도 있었고....
나는 이제 차분히 돌아볼만한 여유가 생겼는데, 아직도 마음을 열지 못하는 걸 보면 슬프다.

어제는 내가 어느 정도는 안다고 믿었던 사람이, 생각도 못한 반응을 보여서 너무 놀라고 당황했다. 자고 일어나서 생각해보니 그럴 수 있다는 생각도 들고, 그 쪽도 너무 당황해서 그랬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 그냥 내 착각인가 싶기도 한데,             그래도 아직 서운하고...


예전에는 내가 어서 어른이 되었으면 했는데, 어른이 된다고 해서 내가 이런 실수를 뚝 그치는 것도 아니고, 다른 사람들도 내게 다들 어른스럽게 굴지만은 않을 모양이다.

노력과 정성이 인간관계를 지속하고 가꾸는 가장 중요한 것임은 틀림없지만, 내 노력만으로는 어떻게 되지 않는 일도 아주 가끔 있는 것 같다. 앞으로도 모든 사람들에게 노력할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지 않은 결과로 끝나는 경우에 나에게 모든 잘못을 돌리고 싶진 않다. 나만 바보같고, 나만 미숙했던 건 아닌가보다.


시간은 좋은 약이지만 시스템 복원 명령은 아니니까, 박상병같은 애들이 어서어서 인연을 새끼쳐서 더 많은 좋은 사람들을 알게 되고, 즐거운 일들도 더 많이 생기게 되길 기대하는 게 더 현명한 일인 것 같다.
그리고 한라봉에게도 더 잘해줘야지. 언제나 고맙고 사랑스런 내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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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9 11:20 2008/11/29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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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Audrey 2008/12/01 15:04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잘있지!
    보고싶어 어여와.............
    연락도뜸하구 얼굴잊어먹겟오 ㅜㅠ
    니가올날을 기다리고잇어영@.@

    • 까망머리앤 2008/12/01 17:09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응 ㅜ_ㅜ
      돌아가서 연락을 폭포처럼 해줄게 흐흐흐
      아웅 요즘 피곤하다, 얼른 돌아가고 싶어! 보고싶어!

  2. 아멜리아 2008/12/02 23:4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꺄웅 진짜 얽히는게 신기하네..
    진짜 착하게 살아야 겠다규ㅠㅠ

    근데.. 말상병 이라는 말이 되게 웃기네..?ㅋㅋ
    왜 말초코야?ㅋㅋㅋ

    • 까망머리앤 2008/12/03 11:54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신기하지? 착하게 살아야 해 =_=

      말초코 ㅋㅋㅋ 고등학교 때 말초코를 본명으로 부르는 아이가 한명도 없었지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심지어 말초코가 친구집에 놀러가면 친구 어머니가 "어머, 초코 왔니~" 이러신다는 이야기도 ㅎㅎㅎㅎㅎㅎㅎㅎ

      왜 말초코인지 내 입으로 꼭 얘기를 해야 한단 말이야?
      잘 생각해봐~ 힌트를 주자면 얼굴이 갸름하고 피부가 초콜렛과 같이 윤기가 흐른다고 해야 하나? 그치만 니가 상상하는 것보다 우리 초코는 괜찮은 군인이야 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웃겨

  3. cpl sohn 2008/12/03 11:3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정갈 아무튼 넌..............^!&&!@&^@!#

    • 까망머리앤 2008/12/03 12:29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나는 니가 중학교 때 롯데월드에 있는 말꼬랑지에서 초콜렛을 뽑아먹다가 이 별명을 얻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는데..... 진짜냐? ㅋㅋㅋㅋ

      괜찮아, 한라봉 친구는 별명이 흑마래. 여자친구 친구들이 그렇게 부른대나 ㅋㅋㅋㅋ 말초코가 백만스무배는 귀엽네

      야 나 오늘 박상병에게서 또 새로운 인연을 새끼쳤어.. 무섭다 -_-

  4. audrey 2008/12/03 21:34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말초코가 윗분이구만 ㅋㅋㅋㅋ

  5. 아멜리아 2008/12/04 00:04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ㅋㅋㅋ 말상병님 미안해요..☞☜

    아 정갈!!
    이제 한자리수다!!!!

  6. 조연 박상병 2008/12/06 18:10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 댓글

    몇일전에 니가 N 군의 이름을 언급했을때는 니가 무슨 감찰부인지 알았다..-_-;;문자 받았을때 정말;;; 섬뜩했다니까;;

    암튼 나도 착하게 살아야 겠다는데는 동감;;
    도대체 나 주변에 몇 명이나 알고 있는거야 ㅋㅋ

    너 아는 사람 더 생기면 좋은쪽으로 말해줄께
    님도 부탁 ㅋㅋ

    • 까망머리앤 2008/12/17 22:25 댓글주소 | 수정 | 삭제

      N군 ㅋㅋㅋㅋ 무섭지? 조심해 훗

      밑에 좋은쪽으로 말해달라는 건 어째 그 대상이 한쪽 성에 고정되어있는 것 같군 쯧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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