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동안 무엇을 하느라 블로그질이 뜸하였는고 하면 뜨개질을 하였다고 대답하리오.
나는 한라봉에게 줄 목도리를 선물하기 위해 1월 1일부터 부지런히 뜨개질을 하였다. 목도리를 떠 주고 싶다는 생각은 한국 돌아오고나서 계속 했었는데 실 사러 가기가 너무 귀찮아서... 동대문에 많이 판다지만 추운데 언제 동대문까지 가.... 이러고 있다가 집에 내려간다는 한라봉을 데려다주러(!! 난 진짜 착한 여자친구다!!) 고속터미널에 갔다가 혹시나 싶어서 강남지하상가에 들렀다. 옷가게, 신발가게는 많은 거 알지만 털실 가게가 있으리라는 큰 기대는 하지 않고 가긴 했다. 상가는 거의 한바퀴를 다 돌았고 에라이 없으면 동대문가자 하는 찰나에 십자수 가게 안쪽에 털실 몇 뭉치가 보였다. 눈을 번쩍 뜨고 자세히 살펴보니 '털실 판매'라는 종이까지 붙어 있었다. "저, 털실 사려고 하는데요.."하며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 아주머니가 매우 반기셨다. 흰색, 회색, 검은색이 번갈아가며 이어지는 털실을 골랐더니 "그거 떠 놓고 보면 얼마나 고급스럽고 이쁜데~"라며 목도리 샘플을 몇개 꺼내놓고 뜰 무늬를 고르라고 하셨다.
'겉뜨기 세코, 뜨지 않고 안뜨기 한코 빼기'로 반복되는 비올라 무늬라는 걸 골랐다.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무난한 세로 체인무늬 반복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초딩 때 목도리 뜬다고 겉뜨기 배운 이후로 처음하는 뜨개질이었는데 아주머니가 잘 배운다고 칭찬해주셨다. 후훗. 근데 손에 익지 않아 가끔 틀리는 게 불안해, 에이 손님도 없는데 배우면서 뜨다가자 싶어서 아예 가게에 퍼질러 앉아서 한참을 뜨다가 나왔다.
그날 저녁에 동두천 박상병, 평택 말상병과 약속이 있었는데 술은 안 마시고 뜨개질만 해서 애들이 진짜 싫어했다. 처음 배운 날인데 술자리에서 집중 잘 안 되는 상태로 뜨다보니 너무 자주 틀려서 한줄 풀고 다시 뜨고, 한줄 또 풀고 다시 뜨고...... 진도는 안 나가고, 한줄 풀고서 바늘에 코를 끼울 때 겉뜨기 안뜨기가 교차하는 걸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끼워서 다시 떠봤자 무늬는 또 엉망이 되고, 난리도 아니었다. =_= 애들은 나중에 혼자 있을 때 뜨라며 면박이었지만 지금 틀린게 눈에 보이는데 그걸 그냥 내버려두자니 마음은 편치 않고 해서 술 마시는 내내 뜨개질......
결국 술자리가 파하고 조용히 집에서 한참을 떴는데, 한 50cm 쯤 떴다 싶었을 때 치명적인 실수를 발견했다. 10cm 넘어서부터 죄다 틀리게 뜨고 있었던 거였다. 망연자실하여 '젠장, 그냥 계속 뜰까' 싶었는데 넘어가기엔 너무 심각한 실수라서 결국 다 풀고 10cm에서부터 다시..... ㅜ_ㅜ 그러나 그 때의 실수로 풀었다 떴다를 반복하면서 이 비올라 무늬의 구조를 완벽히 파악하게 되어 그 다음부터는 실수가 있어도 수정이 빨라지게 되었다는 긍정적인 면도 있었다.
그 다음날도 수업 끝나고서, 아직 휴가중이지만 할 일이 없는 박상병을 앞에 앉혀놓고 학관 라운지에서 계속 뜨개질을 하는데 이 날도 중간중간 워낙 틀려대서 풀었다 떴다를 반복했다. 그 꼴을 보던 박상병 曰 "야, 이거 받는 사람은 이렇게 고생하면서 뜨는 줄 모르겠구나."
그래, 너도 나중에 여자친구한테 목도리 받으면 그 고생을 알아주렴 박상병아.
그렇게 이틀을 고생하고 나니 삼일째부터는 거의 틀리는 일 없이 뜨개질 순항이었다.

뜨개질 삼매경!!
원래 목도리는 깜짝선물이었는데 바보같은 실수로 어이없게 탄로나버렸다.
동생이 크림스파게티를 해 주겠다길래 아무 생각없이 한라봉을 집에 데려왔는데 방바닥엔 털실뭉치가 굴러다니고 테이블에는 '비올라 무늬 뜨는 법'이 씌여진 쪽지까지!!
=_= 그냥 그 뒤부터는 이게 얼마나 힘든일인지 아냐며 고생하는 티 팍팍 내면서 떴다.

완성 직전! 이제 술만 달면 됩니다~
원랜 3일 안에 완성시키는 게 목표였는데 중간에 발표랑 시험이 걸리면서 결국 3일이 더 걸려 어제 완성했다. 마무리랑 술 다는 법을 배우러 다시 한번 강남지하상가에 들러 완성하고, 포장을 하러 신세계백화점까지 갔다. 목도리 뜨는 게 탄로나지만 않았어도 까만 비닐봉투에 넣어 휙 던져줘도 감격했겠지만 이미 들통난 상황에 포장이라도 잘 해서 이쁘게 갖다줘야 할 것 같았다.
백화점 포장, 처음 해 봤는데, 오지게 비싸긴 한데, 이쁘긴 이쁘더라구.......

리본을 풀기 전에 사진 찍는 걸 잊었다

백화점에서 종이로 싸 주시기까지...

와~ 이쁘다~
그래서 목도리 이벤트는 이렇게 끝났습니다.
그렇다면 착용한 인증샷을 올려야 할 것 아닌가! 목도리 두르고서 폰카로 찍었던 사진이 너무 귀엽게 잘 나와서 그냥 확 올려버리고 싶었지만, 우리 한라봉은 이런 곳에서 얼굴이 팔리는 걸 원치 않을 것 같은데다 귀엽다는 건 어쩜 나만의 착각일지도 몰라서.... 그치만 인증샷은 꼭 올린다! blur 처리를 해서라도 ㅋㅋㅋㅋ

입이 찢어져 버렸쪄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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