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간으로 12월 11일 밤에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한동안 폐가 상태로 방치된 블로그에 뭐라도 새 글을 써야겠다는 압박은 있었는데 오랜만에 사람들 만나고 놀러다니느라 정신이 없어서...
도착한 다음날 저녁에 한라봉을 만나러 집을 나섰는데, 저녁에 길거리에 사람이 너무 많아서 놀랐다. 순간 드는 생각은 '오늘 무슨 날인가?'
무슨 날 아니어도 원래 서울엔 사람이 그렇게 많았다. 도로에는 차도 막힌다!
밤이 늦어도 거리는 밝고 가게들은 여전히 영업중!!
한국을 오래 떠나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돌아오면 크게 낯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캐나다의 한산한 거리 풍경에 많이 익숙해진 모양이었다. 처음엔 지하철 출구에서 인파 때문에 이리저리 방향을 틀면서 나가야 하는 게 좀 '불편하다'고 느낄 정도였다. 그래도 난 역시 북적거리는 도시가 좋다. 이 붐비는 도시를 내가 얼마나 그리워했던가!
핸드폰 개통하러 가서도 한국말로 일처리하는 것도 완전 좋다 크흑 ㅜ_ㅜ
한라봉이랑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떡볶이에 김말이튀김 찍어먹는 것도 너무 행복하다 >_<
학관에서 2500원에 양질의 식사를 할 수 있는 것도 진짜 기쁘고,
빵집에 앉아 미래를 함께 고민하며 신세한탄할 친구들이 있는 것도 다행이고,
책장을 휙휙 넘기며 읽을 수 있는 한국어 소설책들은 또 얼마나 즐거운 오락이고,
추운 기숙사가 아니라 마루가 깔린 널찍한 방에서 뒹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편안한지!
통학은 이제 노노, 결국 학교 근처에 방을 잡았다.
널찍하고 네모 반듯 정돈된 밴쿠버의 주택가에 비하면 대학 근처의 원룸촌 골목은 비좁고 지저분하기 짝이 없지만 삼겹살과 설렁탕을 파는 식당도 있고, 몇발짝만 걸어나가면 원하는 건 다 손에 넣을 수 있는 상가가 있다. 이제 장을 보기 위해 30분씩 오지 않는 버스를 기다렸다가 또 한참을 걸어가야 할 필요가 없다. 올해도 돈이 좀 남았는지 인도를 한번 싹 뒤집어놓은 관악구의 연말 풍경은 이제 정겹기까지 하다.
으히히
돌아오니 좋당
오랜만에 학교에 갔더니, 한국은 캐나다보다 학기가 한 주 더 길어서 이제 시험기간 막바지.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는 바람에 마주치는 친구들마다 마치 유령이라도 본 듯이 "어? 니가 왜 여기에!!!"
오늘은 지하철역 출구에서부터 '모꼬지'라고 써진 피켓 든 아이들이 보이고, 귀여운 어린이들이 출구에서 갈 곳을 잃고 우왕좌왕한다 싶었는데 벌써 수시합격생이 발표되어 OT겸 학교답사겸 09학번(헉)들이 놀러온 모양이었다.
09학번......90년생..... 아 나도 휴학 한 번 없이 달렸더니 벌써 졸업반이다. 내가 새내기시절 풀메이크업에 전공책을 옆에 끼고 스커트를 휘날리며 캠퍼스에 연륜을 흩뿌리고 다니던 4학년 언니들이 있었는데, 그게 이제 나다 =_= 메이크업도 좀 늘었고, 전공책도 끼고 있고, 스커트도 휘날리라면 휘날리겠는데 아니 이 나에게도 이제 연륜이 묻어날 때가 된 건가?
저녁시간에 공부하기 싫어서 칭얼대는 한라봉 때문에 도서관 근처를 따라 걸으며 잠시 산책을 하고 있었는데 09학번 어린이들이 08학번들의 인솔 하에 캠퍼스를 이리저리 누비고 있었다.
그래도 난 쫌 낫다는 안도감과 우월감이 동시에 솟아오른 것은 옆에 한라봉이 있었기 때문. 푸후후후후훕. 여기는 03학번이다. 와와와- 그럼 09학번에게는 호랑이 담배 피울 적 입학한 선배가 아닌가!
한라봉을 좀 놀려줘야겠다는 생각에 09학번 무리를 졸졸 따라가면서 자꾸 한라봉에게 "몇학번이에요? 몇학번이에요? 와- 앞에는 09학번이래. 몇학번이에요? 몇학번이에요?"
부끄러워서 한라봉이 하지마하지마 하면서 날 쿡쿡 찌르는 사이에 내 목소리가 좀 컸던지 무리의 뒤에 있던 09학번 어린이들이 우리 쪽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순간 약간 당황하기도 했지만 더 신이 난 나는 "몇학번이에요?"하고 한라봉에게 재차 물었고 어린이들은 뭔가 재미있는 상황이라는 걸 알아챘는지 큭큭 웃기 시작했다. 한 무리의 양떼 같은 어린이들이 그 순진한 눈망울로 나를 바라보며 웃고 있는데, 그 성원에 보답하지 않고 넘어갈 수 없었다. "여긴 03학번이래요~"
난 아이들이 대선배님에게 인사라도 해 줄 줄 알았는데, 아직 입학도 안 한 합격생 신분에 그렇게 높으신 선배님에게 뭐라고 말조차 걸 수 없었는지 약간 난감한 기색을 띠면서, 그렇지만 여전히 큭큭큭 좋아하면서 08학번 선배를 졸졸 쫓아갔고, 너무 쪽이 팔린 우리 한라봉은 그만 그 자리에서 얼굴을 감싸고 주저앉는 시늉까지 하길래 내가 더 민망해서 질질 끌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그리고 우리끼리 앞서 간 09학번들의 대화를 추측했다.
"쟤네 이제 '와- 저 누나 이쁜데 03학번이랑 놀아주네, 안됐다.' 이러고 있을 걸요?"
"아니거든, 분명 '저 정도면 03학번이라도 만나줄만 하네.' 이런 얘기가 나올거라고~"
"대체 저 오빠는 졸업도 안 하고 여태 뭐했을까 한심해할걸요?"
"어......사실 나도 97학번 보고 그렇게 생각했었어......."
고학번들끼리 새내기 구경하고서 신났다 쯧쯔
그래서 결론은 돌아오니까 좋다 이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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